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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初!脱北者ぱく・よんの‘北朝鮮とニッポンと‘4 Asia Press Network 2006年03月0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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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Kotetu 日時 2006 年 11 月 28 日 13:56:22: yWKbgBUfNLcrc
 

ぱくよん日本初!脱北者ぱく・よんの‘北朝鮮とニッポンと‘4私は何故北朝鮮を脱出したのか3


しかし、私にはそれ以外の選択肢はなかった。私は就職していながらも収入がなかったのだ。
何一つ対策のない全社会的混迷運動たる“苦難の行軍”では、誰もが犯罪と死、そしてコチェビになる里程標に従って“行軍”しなければならない。


“50年共和国”の終幕はこのように始まった。
95年からは、職場に出てくる者は、“超馬鹿”となった。
私が勤めていた工場大学(従業員が数万名以上になる大企業の高等教育機関)は、学生は労働者や下級幹部でもあり、自然と休校状態になった。国の上級公務員である大学教員に対してすら、国家からの支給はいつの間にか消滅していた。


私は“解雇”されてもいなかったが、出勤者を見る幹部らの目からは、いまだ“国家”に期待する<抗日遊撃隊式自力更生の革命精神の不足者>とする冷気が感じられた。


そうだった。大学の実験資材や設備等はすべて盗難にあい、管理者とそれを助ける者の<自力更生>、私有物に転落していった。
深夜であっても、人間の力で容易に動かせないモノを学校から運び(盗み)出さ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忙しい彼らにとって、真昼に仕事の無い職場へ出てくる平教員は、大なる邪魔者だった。


密造酒では生計を立てることができないことがはっきりした95年夏、私にはダブルの不幸が降りかかった。密造の元手は、前年秋に、日本からの送金で余裕のある知り合いの帰国者から借りたものだった。
95年の冬は世の中をひっくり返してしまった。あたかも冬眠から覚めたように、今まで見えなかった高利貸闇金融の慣行が北朝鮮にもすい星のように出現したのだ。


民間では“月30%利子”の金融と、それを煽るように、国家も突然“実利”を求め始めた。これが新年の新しいスローガンになった。すると、その債権者も早速新時代式の返還を求めだした。貸す時はすでに旧時代、その6ケ月後の返還は断然新しい時代だった。


もちろん新時代にもそれなりの道徳はあったが、“貸すのはバカ‘,返すのはもっとバカ”とみなされた。
私に支払能力がなさそうだと見立てると、彼らは服から台所のお釜まで、すっかり財産を吐き出させて、元手相当の分をなんとか回収すると、今度はすぐさま利子の分として、まだ家族が住んでいる国家住宅の‘差押権‘を見知らぬ第三者に個人的に譲渡してしまったのである。


多くのチンピラを立てて、私の家族を路上生活に追いやることになる‘住宅差押‘の場には、大学の党書記もきて,それをやめさせようと努めた。しかし、新しい時代には、党秘書もすでに普通の個人に過ぎなかったのだ。


このような‘差押‘は、もともとの住宅制度では全く不可能なことであった。だが、国家統制機関の役人であっても、賄賂をくれた‘差押者‘の味方になってしまったのだった。このようにして、差し押さえという一種のリンチが、公権力による不正的保護下に白昼に行われたのだ。


もうそこには、没落した食糧配給制度の上に立っていた旧時代の政治的権威など、カカシも同然だった。この無秩序では“山犬(強盗を指す)や狐(詐欺師)になれなくては、とうてい生存競争に勝つことはできなくなった”と、異口同音に、全国民が話していたのである。


こうして、多くの健全な党員と知識人、技術者が自らの死を選択して、自宅のオンドルで静かに目を閉じたのだった。


旧時代の“核心分子”たちの“直播”平葬(つまり自殺)は、犯罪に染まることすらできない“つける薬のない人種”という大衆の揶揄と、国家によって無視され放棄されるという冷たい仕打ちによって、時代の大変化と体制の崩壊を、今も世界に伝えている。


제3회

하지만 나에게 열려 있는 길은 그 선택지 이외 없었다. 취직이면서도 수입이 없고, 그래도 아무 대책없는 전사회 패닉크 “고난의 행군”, 누구나 범죄자, 죽음, 코체비의 리정표로만 가야 하는 50년 공화국의 종막은 이렇게 올랐다.


95년부터 직장에 나와 있는 자는 “일등머저리”로 되였다. 내가 근무하던 공장대학(종업원이 수만명 이상되는 대기업에 있는 고등교육기관)은, 학생이 로동자와 하급간부들인데, 자연적 휴교상태였다. 상급공무원인 교원에 대한 국가 지불도 소리없이 소멸하였다.


“해고”는 안되였는데, 나 같은 출근자를 보는 간부들의 눈에서, 아직도 국가에 손을 내미는 <항일유격대식 자력갱생 혁명정신 부족>의 랭기가 느껴졌다.


그랬다. 대학의 실험 자재며 설비 등은 다 도난되여, 관리자들과 그 방조자들의 <자력갱생> 사유물로 전락되였다. 어두운 밤에도 인간의 힘으로 쉽게 움직일수 없는것들을 다 이동해야 할 정도로 바쁜 그들에게, 대낮에 할일도 없이 직장에 나오는 평교원이 큰 장애거리였다.


밀주로는 생계를 이을수 없음이 명백해진 95년 여름, 나에게는 2중의 불행이 찾아 왔다. 그 밑천은 전해 가을, 일본에서 송금이 있어 여유있는 귀국자로부터 꾼것이였다. 95년 겨울은 세상을 180도 뒤집었다. 동면에서 깨여 난듯 이제껏 없었던 고리대 야미금융 관행이 북조선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민간에서 “월30%리자”금융, 그것을 부채질하듯 국가는 “실리”, 이것이 새해 새구호였다.


그러자 그 돈주도 나에게 대뜸 새시대 반환을 요구하였다. 꾸 때는 벌써 구시대, 6개월후 반환할 때는 판판 새시대였다. 물론 새시대에는 그 나름의 도덕이 있는데, “꿔주면 바보, 돌려주면 더 바보”였다. 나에게 지불능력이 보이지 않자 그는 옷이며 가마까지 깡그리 재산을 들어내여 본전에 해당한 분량이 다 회수되자, 리자분으로 나와 가족이 살고 있는 국가주택 차압을 제3자에게 개인적으로 꺼리낌없이 양도하였다.


숱한 불량배들을 몰고와 우리 가족을 거리로 추방하는 주택차압 마당에는 대학당 비서도 와 저지시키느라 애썼다. 그러나 새시대에는, 당비서도 벌써 보통 개인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이런 “차압”은 주택제도상 불가능한 일이였다. 하지만 국가 통제기관 일군들도 벌써 뢰물을 바친 차압자들의 편이였다. 일종의 린치가 공권력의 부정적 비호밑에 공공연히 벌어지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몰락한 식량배급우에 서 있는 구시대의 정치적 권위는 허수아비로 되여 있었다. 이런 무질서에서는 “승냥이(강도)”나 “여우(사기군)”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존경쟁을 할수 없다, 이구동성 전국민이 이렇게 말하였다.


많은 건전한 당원들과 지식인/기술자들이 죽음을 선택하여 자기 주택의 마지막 온들우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구 시대 “핵심분자”들의 “직파” 평장은, 범죄가 두려운 “약 없는 인종”이라는 대중의 해학적 평가와, 외면포기라는 국가의 랭정한 평가로서, 시대의 전향, 체제붕괴를 오늘도 세계에 전하고 있다.


Posted at 2006年03月06日. 19:46

http://apn.on.arena.ne.jp/2006/03/post_1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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